혹시 컴퓨터 폴더 한구석에 먼지 쌓인 영어 인강 파일, 책상 위에서 컵 받침이 되어버린 영어 원서, 해외 취업이나 이직을 목표로 세웠지만 결국 작심삼일로 끝난 경험이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바로 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영어 영포자’를 넘어선 ‘영어혐오자’에 가까웠습니다. 비즈니스 영어 학원은 잦은 야근 핑계로 출석 도장만 찍었고, 고가의 1:1 원어민 과외는 원어민의 “Pardon?” 한마디에 심장이 쿵 내려앉아 결국 해지하고 말았죠. 어학연수는 꿈도 못 꿀 상황이었고요. 영어는 제게 넘을 수 없는 벽이자, 돈과 시간만 낭비하게 만드는 애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듀오링고’ 광고를 보게 됐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또 영어앱 광고네”라며 넘기려 했지만, 무료라는 점에 이끌려 속는 셈 치고 앱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그 7일이, 제 10년 묵은 영어 울렁증을 잠재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마성의 초록 부엉이: 헤어 나올 수 없는 ‘게임화’의 늪
듀오링고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이자 본질은 바로 ‘학습의 게임화(Gamification)’에 있습니다. 이 앱은 우리를 ‘학생’이 아닌 ‘플레이어’로 만듭니다.
- 연속 학습 ‘스트릭(Streak)’: 단 하루라도 공부를 놓치면 꺼져버리는 불꽃. 500일 넘게 이어온 스트릭을 지키기 위해, 술에 취한 와중에도 비몽사몽 앱을 켰던 날이 셀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제 노력의 증표이자,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이었습니다.
- 치열한 ‘리그’ 경쟁: 브론즈부터 다이아몬드까지, 매주 전 세계 사용자들과 벌이는 순위 경쟁은 엄청난 동기부여가 됩니다. 특히 강등권(Demotion Zone)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을 때의 그 초조함은, 주말 저녁을 통째로 듀오링고에 바치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이처럼 듀오링고는 ‘공부’라는 지루한 행위를 ‘경쟁과 보상이 있는 게임’으로 완벽하게 탈바꿈시켰습니다. 덕분에 저는 단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매일 외국어를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력이 늘었는가?
자,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할 차례입니다. “듀오링고만으로 외국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는가?”
제 대답은 “아니요, 하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되어주었습니다.” 입니다.
듀오링고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앱이 어학연수처럼 완벽한 몰입 환경을 제공하거나, 고가의 전화영어나 영어 학원처럼 즉각적인 영어 면접 스킬을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 비현실적인 문장: “코끼리는 맥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와 같이 실생활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문장들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됩니다. 이는 문법 구조를 익히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실제적인 회화 능력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 부족한 회화 연습: AI 튜터와 실제 대화처럼 연습하는 기능이 있는 유료 앱과 달리, 듀오링고는 정해진 문장을 듣고 따라 말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다양한 상황에 맞춰 순발력 있게 문장을 만들어내는 ‘실전 회화’ 능력은 길러주지 못합니다.
- 얕은 깊이: 듀오링고는 언어의 기초, 즉 기본적인 어휘와 문법의 뼈대를 세우는 데는 탁월합니다. 하지만 토익, 토플 같은 시험을 준비하거나 중급 이상으로 넘어가기 위한 깊이 있는 학습은 부족합니다.
결론적으로, 듀오링고 하나만으로 유창한 실력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앱은 종합 학원이 아니라, 매일 꾸준히 근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언어 습관 헬스장’에 가깝습니다.
최고의 ‘언어 습관 형성 도구’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그렇다면 듀오링고는 아무 쓸모없는 앱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듀오링고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효과적인 ‘언어 습관 형성 도구'”라고 말이죠.
듀오링고는 다음과 같은 분들께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 외국어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완전 초보자
- 의지박약으로 매번 작심삼일에 그치는 분
-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 최소한의 기초를 다지고 싶은 분
- 본격적인 토익 스피킹, 오픽 공부에 앞서 영어와 친해지고 싶은 분
듀오링고는 당신을 원어민으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일 책상에 앉아 외국어를 들여다볼 ‘엉덩이 힘’을 길러주고, 언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흥미로 바꿔주는 최고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새로운 언어의 문을 두드릴 용기가 필요하다면, 오늘 당장 장난스러운 초록 부엉이와 함께 게임 한 판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적어도 하루 10분, 당신의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 확신합니다.
